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메르 루주 (문단 편집) == 좌익 무장 단체 시절 == [[북베트남]]의 지원으로 탄생했으며, [[베트남 전쟁]] 시기 세력을 확대하여 농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사실 붉은 크메르가 세력을 확장하고 인기를 얻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직간접적인 영향이 크다. [[베트남 전쟁]] 과정에서 미군은 [[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캄보디아에도 폭격을 가했으며, 친미 우익 세력의 쿠데타를 획책했다. 미군은 캄보디아에 베트콩이 다수 주둔해 있다는 첩보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1969년부터 1972년까지 23만발의 폭탄을 떨어트렸다. 캄보디아는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베트남 전쟁 발발 후 미국과 단교하였고, 1966년에는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이 캄보디아 내에 기지를 설치하고 시아누크빌로 물자를 보급받을 수 있도록 중국과 협정을 체결하는 등 친 북베트남 외교 정책을 펼쳤다. 또한, [[베트콩]] 게릴라는 보급이나 기습 용도로 [[베트콩#s-3.4|구찌 땅굴]]을 이용했는데 이 땅굴은 베트남은 물론 인접한 캄보디아나 라오스로 이어져 있었으므로 딱히 틀린 주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캄보디아 폭격이 베트콩의 땅굴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였고, 되레 그 폭격에 죽은 민간인만 최소 5만명에서 최대 15만명으로 추산된다. 1960년대 캄보디아는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이 의회를 장악하며 사실상의 독재 정치를 펼쳤다. 또한 1960년대 중반부터 경제 성장이 침체하기 시작하면서 시아누크에 대한 반발이 조금씩 늘어나며 이념 대립도 심해졌다. 이 과정에서 1970년 우익 쿠데타가 벌어져 [[론 놀]]에 의한 [[크메르 공화국|친미 정권]]이 수립되었는데 론 놀 정권은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벌어지는데도 못 본 체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였고, 경제 정책에서도 무능하기 짝이 없었으며 특히 당시 군부도 학살에 가담하기는 마찬가지인 막장이었기에 캄보디아 내에서 [[반미]] 정서가 팽배해졌다. 결국 시아누크가 크메르 루주와 손을 잡으며 지지 기반을 급속히 늘릴 수 있었고 결국 1975년에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1975년 [[민주 캄푸치아]] 정권이 성립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